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본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_8YxFc_1b_0)]}}} || || '''카터와 레이건이 맞붙은 유일한 토론회가 된 2차 토론회''' || 1980년 대선은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2년 대선]] 이후 양당 후보가 가장 대비되는 대선 캠페인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레이건이 국방력 강화를 외치면서도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듭시다."(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을 구호 삼아 낙관주의적인 캠페인을 펼친데 비해 카터는 레이건에 대한 네거티브에 힘쓰며 레이건이 대통령이 될 경우 [[뉴딜 정책]]이 후퇴하고 시민권과 사회보장제도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이건은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올 공략을 내세웠는데 [[세의 법칙]]을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공급주의 경제정책으로의 복귀]]를 통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고 세율을 낮춰야 스태그플레이션을 탈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이건이 이때 한 말 중 "[[불경기]]란 당신의 이웃이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 [[불황]]이란 당신이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 경기회복이란 지미 카터가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는 지금도 미국 선거사를 돌아볼때 자주 회자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그와 더불어 미국의 국방력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국방 예산을 대폭 증가시킬 것을 약속했다. 반면 카터는 레이건의 경제 공략을 비판하면서도 본인이 대안이 될만한 공략은 내놓지 못했고 이것이 오늘날에는 대선 패배의 단초가 됐다고 평가받는다. 사회 정책에 있어서는 각 주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연방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야한다면서 지난 대선에서 카터를 지지했던 남부주의 유권자들을 흔드는데 성공했지만 언론으로부터는 주권(States' rights)이라는 도그 휘슬을 통해 남부주에 잠재된 혐오와 인종차별을 자극한다며 비판받았다. 또한 공화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독자 출마한 앤더슨 역시 1차 토론회[* [[지미 카터]]가 불참을 선언하는 바람에 레이건과 앤더슨의 맞대결이 됐다.]에서 레이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오히려 레이건이 성공적으로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앤더슨의 지지율만 떨어져 2차 토론회 참석 자격을 잃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여론조사에서는 카터의 실정에 대한 반발로 레이건이 근소하게 우위를 잡고 있었고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2차 토론회에서도 레이건이 선전하면서 우위를 굳혔다. 당시 토론회 직후 여론조사에서 레이건의 의견에 동감한다는 의견은 무려 66%에 달했다. 당시 토론회를 무려 8060만명이나 시청했는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2016년 대선]]에서 기록이 경신될때까지 무려 36년이나 최고 시청자 수 기록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앤더슨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카터의 지지율이 상승해 두 후보 지지율이 다시 오차범위 이내로 줄어들었고 투표일 직전 마지막 여론 조사에서는 레이건이 47%, 카터가 44%를 기록하며 레이건이 3%p 차의 아슬아슬한 리드를 잡고 당일을 맞이하게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